노래 고향역(나훈아) 노인대학용 큰글자 가사자막 노래배우기 (Old Kpop, go hyang y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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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역(나훈아) 노인대학용 큰글자 가사자막 노래배우기 (Old Kpop, go hyang yeok)
고향역
작사,작곡 임종수
노래 나훈아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 서 갈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고향역’의 원곡은 ‘차창에 어린 모습’이다. 이 곡은 임종수 선생의 68번째 곡으로서 선생은 당시까지도 무명이었다. 무명 작곡가가 이름을 날리는 길은 단 한 가지. 유명 가수에게 곡을 줘 히트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훈아가 전속해 있는 오아시스레코드사를 무작정 찾아가 3개월 동안 나훈아를 기다렸다. “딱 5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딱 5분만’이라는 말에 나훈아는 마음이 흔들렸다. 나훈아는 그의 노래를 세 번 듣고는 그 자리에서 악보에 사인을 했다. 1970년 3월 9일 나훈아가 노래를 취입한 것이다. 그러나 우여곡절은 남아 있었다. ‘차창에 어린 모습’이 나훈아의 타이틀곡으로 편집되려 하였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세 번째 곡으로 밀려났다. 게다가 가사가 건전하지 못해 방송 불가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차창에 어린 모습’은 방송 한번 못 탄 채 사라지는 비운의 신세가 되었다. 임종수는 여전히 무명 작곡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1971년 12월 말 그는 오아시스레코드사에 들렀다가 나훈아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나훈아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선생님, ‘차창에 어린 모습’이 너무 아깝심니더. 어차피 방송도 안 되었으니 슬픈 가사를 띠고 건전하게 고쳐 주이소. 리듬도 트로트에서 고고로 바꿔 주시고예. 고고로 바꾸면 경쾌하게 들리지 않겠어예.” 임종수는 제목, 가사, 리듬을 바꾸는 문제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건전한 내용’을 놓고 여러 날을 고민했다. 불현듯 중학교 2학년 때 황등역에서 이리역까지 통학하던 일이 생각났다. “익산군 삼기면 형님 집에서 산길을 넘어 황등역으로 가 통학 열차를 타곤 했어요. 아침밥을 해먹고 이십리 산길을 넘어 열차 시간에 맞춰 가는 게 고통의 연속이었죠. 뛰다시피 해서 겨우 열차에 타면 발판에 걸터앉아 이리역에 도착할 때까지 숨을 몰아쉬곤 했어요. 그때 기찻길 옆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일단 주제를 ‘고향역’으로 하자 가사는 술술 풀려나갔죠.” 1972년 2월 8일, 나훈아는 ‘고향역’을 취입했는데, 이번에도 ‘고향역’은 타이틀곡이 아니었다. ‘고향역’은 또다시 주목 받지 못했다. 행운의 여신은 끝까지 임종수에게 손짓을 하지 않나 싶던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나훈아가 전격적으로 지구레코드사로 전속사를 옮겨버린 것이다. 지구레코드사는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을 내놓았다. 위기의식을 느낀 오아시스레코드 측은 맞불을 놓기 위해 묘수를 짜냈다. 전국 방송국 PD들에게 긴급 설문을 돌렸다. 나훈아의 앨범 중 타이틀곡을 제외한 알려지지 않은 곡 중 ‘베스트 10’을 골라달라는 내용이었다. 베스트 10 중 1위가 ‘고향역’이었다. 레코드사 측은 ‘고향역’을 타이틀곡으로 다시 앨범을 내놓았고 9월이 되자 전국은 ‘고향역’으로 뒤덮여버렸다. 산업화로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고향역’의 무대 황등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간이역과 사람들), 2008., 한국콘텐츠진흥원)
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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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rQ5J72fw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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